2010.04.09 23:21 독립문화기획인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박슬기

 

 디자인을 포함한 문화의 흐름을 이야기 하며 지나 온 문화의 문제점을 적나라 하게 말 해주고 그런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인식의 문을 열어 주는 듯 했다. 디자인을 포함한 문화정치판 인사들의 실명을 기제 함은 독자로서, 문화기획자 지망생으로서 문제 인식에 대하여 신빙성을 가질 수 있었다. 문화의 흐름과 그 정체성은 예술가와 관객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와 예술가와 관객의 땔 수 없는 삼각관계에서 누군가의 강한 힘으로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과연 누군가가 억지로 만드는 문화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대중이 바라 봐 주지 않고 허공에 떠들고 있는 예술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정치, 예술가, 관객의 삼각관계에서 아름답고 진정한 문화로 계속 나아 가기 위해 무용 분야가 버려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 까? 그리고 새로이 받아 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과거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과 고유의 미학이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현재 우리 문화가 이렇게 척박하고 엉망인 이유는 무엇 일까 ......  하지만 진정 마음을 이어주는 문화적 연결 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 연결고리의 핵심에 디자인이 있다. 만일 이 시대에 우리가 디자인한 모든 것들이 뿌리 깊은 문화를 형성하고, 훗날 역사 속에 기록 된다고 생각 한다면 지금처럼 쉽게 마구 만들지는 않으리.’

 

초기의 공연은 굿이 었고 한바탕 놀이의 의미였다고 어느 글을 본 적이 있다. 예술가와 관객의 만남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한바탕 놀이 였다는 것에서 현재의 무용 공연 문화에서 돌이켜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아마도 현 대학교 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으리라 생각 한다) 교수님의 공연, 학교 관계자들의 공연이 있을 때면 티켓강매가 이루어 진다. 이 말인 즉 슨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 들을 포함하여 해당 무용과 학생들은 강매를 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수님 공연을 관람하고 리포트를 내야 하는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교수님의 공연은 학교 학생으로서 당연히 봐야 할 공연이라는 식이 였고 그에 익숙해 져 가는 학생들 또한 세뇌되어 가고 있었다. 출연하는 무용수들에게는 티켓이 주어진다. 의무적으로 티켓 다량을 구매하고 알아서 팔아 라의 식이다. 그렇지 못 하면 본인에게 주어지는 티켓 값은 본인이 알아서 채워야 한다. 이런 의무적인 공연 관람의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할 길이 없었고 그 시절 어리석게도 억울함을 곱씹으며 그냥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런 공연이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교수님이 원하는 것은 관람을 하고 온 학생들과의 토론의 장도 아니고 무용공연의 대중화도 예술성을 알리고자 하는 것도 아닌 것이 오직 작품에 들인 비용과 시간, 공연이라는 것에서 오는 명예욕을 학생들에게 보상 받기 위함으로 밖에 여겨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공연은 아마도 지금의 대학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을 것이다. 학교와 교수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고문을 하고 있는 무용계, 관객층이 점점 좁혀져 가고 있는 공연문화가 과연 훗날 어떻게 포장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점만 남게 된다. 교육의 중심, 문화의 문지기를 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들의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한 티켓 강매의 현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우리 시대의 시각문화와 예술이 종래의 미술대학 체제에서 교육받은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들처럼 감각훈련만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정의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상을 치열하게 관찰하는 사회 과학적 통찰력, 인간존재언어•역사에 대한 인문적 지혜와 성찰력, 첨단 과학기술에서 영감을 구하는 과감한 실험과 개발력, 감성적 상상력과 창조력. 앞으로 우리는 고립된 고상함과 진부한 심각한대신에 이 모든 지적 능력사이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분투하는 열린 행위를 예술이라 부르고, 이 같은 활동에 기꺼이 열려있는 인간을 예술가라 불러야만 할 것이다.

 

무용의 본래 인간의 움직임의 소통에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인간의 움직임을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으로 나누어 말하는 인간의 소통은 무엇을 위하는 것인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표현을 비롯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표현방법과 연구에 대한,  마음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 아닐까. 움직임의 소통이 갖고 있는 의미에서 인간은 사사로이 규명을 짓는 다는 것은 이제 쓸모 없는 짓’, ’고립된 고상함과 진부한, 심각한것들이다. 무용수는 이제 한국무용을 합니다가 아닌 팔을 물결을 치듯 움직입니다, ‘발레에서는 발끝을 세우기 위한 장치를 하고 팔다리를 높게 올립니다 등과 같이 발레를 합니다 한국 무용을 합니다 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의 움직임은 본래 다 같은 것. 그것에 대한 구분은 인간은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바보 짓인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성질을 연구하고 인간이 가진 것들을 표현 해 내고 타인과 공감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남다른 성찰력으로 찾아 낸 인간의 흐름과 흐름에 따른 인간의 특성을 몸으로 표현 해 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움직임의 요소는 이제 다 보여졌다. ‘무용의 예술가가 할 일은 그것들을 어떻게 엮어 낼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21세기의 무용수는 어떻게 인간을 표현 할 수 있어야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제 예술은 과거처럼 단순히 독립적인 매체의 속성에 근거한 순수 감각으로 정의 되지 않는다. ….. 말과 문자, 이미지, 음악, 신체적 움직임, 동영상 등 모든 것이 다중매체로 혼합되어 지적인 상상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다.’

 

미디어와 디지털 시대의 움직임. 그것이야 말로 인간의 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흐름 인 것 같다. 21세기라고 말하는 디지털 시대. 그 시대 속에서 인간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의 표현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 걸까?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

 (사람, 몸짓, 리듬, 일상의 움직임)과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고 다양한 작가군을 발굴하고자 진행하는 축제다.

필름이라는 2차 생산물을 제작과 유통 그리고 산업적인 발전 가능성 때문에 적지 않은 지자체나 기업들이 미디어아트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 작가들의 동 분야 이해도 매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들을 독려하고 다양한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이 행사의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관객들과의 소통의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지속적인 행사개최를 통해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가고자 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공연예술이 그 한계를 뛰어넘어 보존가치를 가진 자료로 축적해 가는데도 본 행사는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국제 기관 및 축제들과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본 행사는 이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 작가들의 위치와 한국 문화의 자리를 찾는 것에도 기여할 것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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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DIDance(:디댄스)|작성자 디댄스

 

 

 

 

 

 

 

 

 

 

 

 

 

네 번째 불연속 TheF ourth Discontinuity

댄스씨어터 까두(안무/박호빈) +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 서효정 공동작업

 '기계적인, 너무나 기계적인 존재,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인'이란 부제를 달고 예술가, 안무가, 사운드 디자이너, 비주얼 아티스트들이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만든 작품

 

미디어 & 무용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습관

쟈크 풀랭 드니(Jacques Poulin-Denis/Canada) & 남상원(NAM Sang-won)

 

소리와 움직임의 관계움직임으로서의 소리를 연구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출발한다.

가령 소리의 조종자나 창조자로서의 무용수나 배우가소리로 그려진 풍경화속에서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는 가이다. 연구의 다음 단계는 이런 컨셉을 라이브 공연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신체는 음악을 만드는 데에 있어 어떤 식으로 관여하게 되는지, 혹은 어떻게 음악 연주를 망가뜨리지 않는 라이브 사운드 악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등을 풀어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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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 & 무용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습관> |작성자 디댄스 [출처] 미디어 & 무용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습관> |작성자 디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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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뿐. 한발 더 진보하는 움직임의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대가 원하는 예술을 보여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과 디지털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인간이 디지털시대로 변화하는 움직임. 인간의 모습을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보여주는 표현의 수단. 이런 것들이 진보 하는 무용이 잊지 말아야 과제 인 듯 싶다.

 

 

 

     

 

 

 

 

 

 

 

 

 

 

 

 

 

 

 

 

 



[1]http://blog.naver.com/didance25


posted by sseul.P
2010.04.08 10:56 춤을봅니다

posted by sseul.P
2010.03.29 00:46 독립문화기획인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

- 블로그와 디자인

박슬기

 

열두 줄의 20세기 디자인사는 나를 또 한번 절망에 빠지게 했다. 전문용어 사용과 디자인사에 대한 빠른 흐름. 그 흐름을 쫓아 가기엔 나의 눈과 머리가 너무 느렸고 전문용어를 이해 하기엔 두뇌의 오류가 발생했다. 두 눈 크게 뜨고 한 문단을 서너 번씩 읽으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나에게 역사란 너무나도 멀고도 영화 같은 이야기 같고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 보고 현실을 직시 할 때 왠지 아직도 역사 속에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간혹 있다.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이 2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온 듯한 기분이랄까.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는 아직 빠르게 발달되어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세상 속에서 늘푸른 동산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현란한 미디어 세계와 테크놀로지의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 여기고 있었고 그것들을 들여다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눈의 피로를 주는 모니터를 바라 보기 보다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세상을 보기를 좋아했고 나의 공간은 먼지가 구석구석 쌓여 있는 작은 나의 방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공간이 나의 머리 속에서 정리 되면 그만 이었고 다양하고 화려함은 사치라 느끼며 절대적으로 단순함으로 살아왔다.

이런 나에게 블로그 관리라는 부담이 주어지게 되면서 세상을 들썩이게 하는 블로그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미처 알지 못 했던 세계들이 펼쳐진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고 또한 아주 다양한 목적과 모습들로 이루어진 블로그들을 보며 한참 감탄을 연발하는 중이다.

 

열두 개의 명제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블로그에 대한 필자의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견해로 이야기를 나아 가려고 한다. 블로그 라는 공간 안에 어떤 기능들과 형태로 디자인 되어 지고 있으며 나날이 발전하는 블로그가 안겨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려 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1인 미디어 플랫폼 블로그는 제 각각의 형태와 기능을 가진다.’

싸이월드라는 개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공개하고 관리하는 홈페이지에서 나아가 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블로그가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네이버, 다음, 야후, 티스토리, 티위터 등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들은 개인의 블로그를 개설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세계와 대화 할 수 있는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또 다른 세계를, 자아를 형성 해주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9 2월 코스코어의 국가별 인터넷 이용자 현황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수는 2725만 명인 것으로 집계되었고 이 중 42%의 블로거가 있다면 약 1144만 명의 정도가 블로그를 개설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블로그 개설은 더 많이 개설될 것으로 예상 된다면 약 1200만 명 정도의 블로그가 개설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1] 이렇듯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가 블로그에 투자를 하며 지속적인 유지와 새로운 방식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블로그의 용도는 다양하다. 개인의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기 위함도 있고 개인의 취미나 관심사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올리기도 하고 또는 경제 활동에 기반이 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의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용도는 본인이 가지는 역량에 따라 많은 기능을 한다. 본인을 세상에 알리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나 관심사에 대한 흐름에 대해 알리기도 한다. 블로그는 이런 다양한 용도를 실행 시켜 줄 수 있는 엄청난 기능을 갖추고 있다. 동영상을 게시하고 내가 쓴 글을 다른 사이트에 자동으로 올려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덫 붙여 주기도 하는 등 세상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세상과 대화 할 수 있는 기능은 모두 갖추고 있는 듯 했다. 이 작은 네모난 상자 앞에 앉아 이 모든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블로그에서 세계가 실시간으로 대화 할 수 있는 기능을 알게 된 이후 동참 해야 한다는 강한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보다 아름다운 일상용품은 디자인을 사회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설정하고, 이를 새로운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미학을 성취하려는 시도로서 등장했다. 20세기 초 사회 변혁에 대한 스웨덴 디자인 이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문제의식은, 분명 동시대 유럽대륙의 전투적 아방가르드 모더니스트들의 이념에 닿아 있었다.

 

가끔 랜덤으로 블로그 순회를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놀라운 솜씨의 블로그 디자인들을 볼 때가 있는데 정말 기억에 남고 블로거를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다. 음악이라는 소재(음악기호를 활용)를 가지고 디자인 한 블로그로 기억하는데 제각각 재미있게 디자인 한 사이드 바와 배경 그림을 모두 직접 재작한 것으로 보였고 블로거의 귀여운 캐릭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 가이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블로그의 모든 디자인은 블로거의 성향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었고 디자인 그 자체 만으로도 베스트 블로그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보다 재미있고 블로거 만의 특별한 디자인은 새로운 미학의 성취에 목적을 달성 한 듯 보였고 아방가르드 이념에 잘 맞은 듯 보였다. 아주 흥미로운 디자인으로 링크를 걸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쉬움으로 남는다.(무의식 속에서 손가락은 를 누르고 있었다)

 

보다 아름다운 블로그가 나를 자극 했고 색다르고 흥미진진하게 했다.

해밀턴은 현대 사회의 가정을 색다르고 흥미진진하게 하는 요소로서 가족간의 정서적 유대보다는 사람의 존재마저 물화物化 시키는 사물을 주시했다. 즉 그는 색다르고 흥미진진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이데올로기의 단초를  일상 사물에서 찾아 낸 것이다. 해밀턴은 일찍이 이 작품을 통해 소비 사회를 구동 시키는 물적경제적 토대가 팝문화의 거대한 근간임을 짚어냄 으로써 20세기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앞에서 말한 블로그를 디자인한 블로거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본인이 그 블로그에서 살아 있다는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 귀엽고 예쁜 캐릭터를 디자인 한 것으로 본다. 그 캐릭터가 블로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탐방 온 손님들에게 가이드 역할도 하며 스스로가 블로그 속에서 흥미진진한 삶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남과 같지 않다는 차별성을 두고 스스로가 만든 문화 속에서 인생을 색다르고 흥미진진 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만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감성의 뇌를 자극 하는 디자인은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며 지루하게 하거나 아주 흥미롭게도 한다. 본인의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헤어 스타일에 파격적인 변화를 주는 것과 같이 디자인이라는 것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있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이미지 소비에 공헌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사물의 디자인이다. 스타일이야말로 상품을 차별화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되고, 그 의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의 소비를 유도한다.’

 

오늘날의 디자인은 상품 구매의 최고의 고려 조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 신발, 가방, 거주지, 자동차, 책 하나까지도 이왕이면 (물론 내용이 우선이겠지만)세련되고 촌스럽지 않은, 자신을 충분히 표현 해주고 타인 과의 차별화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고른다. 이처럼 디자인 선택의 고민은 일상 어디에서든지 일삼게 되고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고민이자 선택인 것이다. 블로그가 상품의 구매의 욕구를 자극 시키기 위한 목적라면 사람들의 눈과 뇌 속에 한번에 박히게 해줄 디자인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블로그는 내용물의 디자인과 외형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을 유혹 시킬 다양한 이미지들을 등록하고 동영상이나 글을 올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들을 구매 후기를 어느 제약 없이 자유롭고 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비자의 손에 상품을 쥐게 할 수 있는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다.

 

블로그와 디자인의 사이에는 인간은 정체성 표출이라는 목적을 갖는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 오프라인의 인간의 유대감 형성이 온라인의 유대감 형성으로 변화하면서 자신만이 가지는 문화와 생각들을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표현, 광고 한다. 블로그의 문화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형성하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자신을 표현 하는 가장 큰 도구로써 자리잡게 될 것이다.

블로그의 이용자 수가 늘고 있는 지금, 인터넷 세상이 없어지지 않은 한 디자인이 가지는 성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흐름에 대해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형태는 감정과 기능을 따르게 될 것이고 보다 아름다운 상품들로 갖추어져야 할 것이며 억지스러운 장식 없이 블로그에서 말 하고자 하는 본질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공간 기계로써의 충분한 역할을 하여 흥미진진하게 인간의 삶을 영위토록 하며 소통의 공간 속에서 굿 비즈니스를 초래 해 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 해주는 문화의 주체로써의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sseu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