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문화디자인’
박슬기
디자인을 포함한 문화의 흐름을 이야기 하며 지나 온 문화의 문제점을 적나라 하게 말 해주고 그런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인식의 문을 열어 주는 듯 했다. 디자인을 포함한 문화정치판 인사들의 실명을 기제 함은 독자로서, 문화기획자 지망생으로서 문제 인식에 대하여 신빙성을 가질 수 있었다. 문화의 흐름과 그 정체성은 예술가와 관객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와 예술가와 관객의 땔 수 없는 삼각관계에서 누군가의 강한 힘으로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과연 누군가가 억지로 만드는 문화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대중이 바라 봐 주지 않고 허공에 떠들고 있는 예술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정치, 예술가, 관객의 삼각관계에서 아름답고 진정한 문화로 계속 나아 가기 위해 무용 분야가 버려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 까? 그리고 새로이 받아 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과거 우리에게 아름다운 삶과 고유의 미학이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현재 우리 문화가 이렇게 척박하고 엉망인 이유는 무엇 일까 ...... 하지만 진정 마음을 이어주는 문화적 연결 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 연결고리의 핵심에 디자인이 있다. 만일 이 시대에 우리가 디자인한 모든 것들이 뿌리 깊은 문화를 형성하고, 훗날 역사 속에 기록 된다고 생각 한다면 지금처럼 쉽게 마구 만들지는 않으리.’
초기의 ‘공연’은 굿이 었고 한바탕 놀이의 의미였다고 어느 글을 본 적이 있다. 예술가와 관객의 만남은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한바탕 놀이 였다는 것에서 현재의 무용 공연 문화에서 돌이켜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아마도 현 대학교 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으리라 생각 한다) 교수님의 공연, 학교 관계자들의 공연이 있을 때면 ‘티켓강매’가 이루어 진다. 이 말인 즉 슨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 들을 포함하여 해당 무용과 학생들은 강매를 하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교수님 공연을 관람하고 리포트를 내야 하는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교수님의 공연은 학교 학생으로서 당연히 봐야 할 공연이라는 식이 였고 그에 익숙해 져 가는 학생들 또한 세뇌되어 가고 있었다. 출연하는 무용수들에게는 티켓이 주어진다. 의무적으로 티켓 다량을 구매하고 알아서 팔아 라의 식이다. 그렇지 못 하면 본인에게 주어지는 티켓 값은 본인이 알아서 채워야 한다. 이런 의무적인 공연 관람의 억울함을 어디다 호소할 길이 없었고 그 시절 어리석게도 억울함을 곱씹으며 그냥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런 공연이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 교수님이 원하는 것은 관람을 하고 온 학생들과의 토론의 장도 아니고 무용공연의 대중화도 예술성을 알리고자 하는 것도 아닌 것이 오직 작품에 들인 비용과 시간, 공연이라는 것에서 오는 명예욕을 학생들에게 보상 받기 위함으로 밖에 여겨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공연은 아마도 지금의 대학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을 것이다. 학교와 교수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고문을 하고 있는 무용계, 관객층이 점점 좁혀져 가고 있는 공연문화가 과연 훗날 어떻게 포장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점만 남게 된다. 교육의 중심, 문화의 문지기를 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들의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한 ‘티켓 강매’의 현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우리 시대의 시각문화와 예술이 종래의 미술대학 체제에서 교육받은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들처럼 ‘감각훈련’만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정의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상을 치열하게 관찰하는 사회 과학적 통찰력, 인간존재•언어•역사에 대한 인문적 지혜와 성찰력, 첨단 과학기술에서 영감을 구하는 과감한 실험과 개발력, 감성적 상상력과 창조력. 앞으로 우리는 ‘고립된 고상함과 진부한 심각한’ 대신에 이 모든 ‘지적 능력’ 사이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분투하는 ‘열린 행위’를 예술이라 부르고, 이 같은 활동에 기꺼이 ‘열려있는 인간’을 예술가라 불러야만 할 것이다.
무용의 본래 인간의 움직임의 소통에서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인간의 움직임을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으로 나누어 말하는 인간의 소통은 무엇을 위하는 것인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표현을 비롯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표현방법과 연구에 대한, 마음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 아닐까. 움직임의 소통이 갖고 있는 의미에서 인간은 사사로이 규명을 짓는 다는 것은 이제 ‘쓸모 없는 짓’, ’고립된 고상함과 진부한, 심각한’ 것들이다. 무용수는 이제 ‘한국무용을 합니다’가 아닌 팔을 물결을 치듯 움직입니다, ‘발레’에서는 발끝을 세우기 위한 장치를 하고 팔다리를 높게 올립니다 등과 같이 발레를 합니다 한국 무용을 합니다 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의 움직임은 본래 다 같은 것. 그것에 대한 구분은 인간은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바보 짓인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성질을 연구하고 인간이 가진 것들을 표현 해 내고 타인과 공감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남다른 성찰력으로 찾아 낸 인간의 흐름과 흐름에 따른 인간의 특성을 몸으로 표현 해 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움직임의 요소는 이제 다 보여졌다. ‘무용’의 예술가가 할 일은 그것들을 어떻게 엮어 낼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21세기의 무용수는 어떻게 인간을 표현 할 수 있어야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제 예술은 과거처럼 단순히 독립적인 매체의 속성에 근거한 ‘순수 감각’으로 정의 되지 않는다. ….. 말과 문자, 이미지, 음악, 신체적 움직임, 동영상 등 모든 것이 다중매체로 혼합되어 지적인 상상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다.’
미디어와 디지털 시대의 움직임. 그것이야 말로 인간의 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흐름 인 것 같다. 21세기라고 말하는 디지털 시대. 그 시대 속에서 인간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의 표현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하는 걸까?
춤(사람, 몸짓, 리듬, 일상의 움직임)과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하고 다양한 작가군을 발굴하고자 진행하는 축제다.
‘필름‘이라는 2차 생산물을 제작과 유통 그리고 산업적인 발전 가능성 때문에 적지 않은 지자체나 기업들이 미디어아트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 작가들의 동 분야 이해도 매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들을 독려하고 다양한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이 행사의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관객들과의 소통의 문제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지속적인 행사개최를 통해 관객과의 접점을 넓혀가고자 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공연예술이 그 한계를 뛰어넘어 보존가치를 가진 자료로 축적해 가는데도 본 행사는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국제 기관 및 축제들과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본 행사는 이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 작가들의 위치와 한국 문화의 자리를 찾는 것에도 기여할 것이다. [1]
[출처]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DIDance(:디댄스)|작성자 디댄스
▪ 네 번째 불연속 TheF ourth Discontinuity
댄스씨어터 까두(안무/박호빈) +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범, 서효정 공동작업
▪미디어 & 무용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습관>
쟈크 풀랭 드니(Jacques Poulin-Denis/Canada) & 남상원(NAM Sang-won)
가령 소리의 조종자나 창조자로서의 무용수나 배우가 ‘소리로 그려진 풍경화’ 속에서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는 가이다. 연구의 다음 단계는 이런 컨셉을 라이브 공연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신체는 음악을 만드는 데에 있어 어떤 식으로 관여하게 되는지, 혹은 어떻게 음악 연주를 망가뜨리지 않는 라이브 사운드 악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등을 풀어내 볼 것이다.
[출처] 미디어 & 무용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습관> |작성자 디댄스
‘디지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 일뿐. 한발 더 진보하는 ‘움직임의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대가 원하는 예술을 보여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과 디지털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인간이 디지털시대로 변화하는 움직임. 인간의 모습을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보여주는 표현의 수단. 이런 것들이 진보 하는 무용이 잊지 말아야 과제 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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